여름이 가고 있는 시간.
9월의 첫날이 왔다.
무더운 더위가 그래도 한풀 꺾인 듯해서 아침저녁으로 살랑이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올해의 더위는 정말 무덥고 무덥고 무더웠다.
아직 한 낮시간은 똑같이 무덥고 무덥지만.
곰곰이 키우면서 에어컨을 정말 많이 안켰었는데 올해는 풀가동 했던 것을 보면.
비염아이라 에어컨 틀면서 가습도 하는 상황인지라 진짜 잘 안 켰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올해는 아침저녁으로 살랑이던 바람은 없고 열대야가 오래 지속되고 곰곰 이가 너무 더워 너무 더워를.. 외치니 틀자 틀어하고 풀가동 시켰다. 여보 일 열심히 하세요..라고 하며.
켜도 안시원한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인지.. 기분 탓일까.. 에어컨은 정상 작동인데.. 주변에 물어보니 다 비슷 에어컨이 더위를 못 따라가는 것 같다고! 그만큼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지난주부터는 에어컨 가동은 안 하고 있다. 살랑이는 바람이 좋은 그런 날들의 시작.
가을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온도차와 바람은 괜스레 설레게 한다.
나는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곧 백수 되는 나.
가을엔 5년 가까이 하던일을 멈추려고 한다. 한 달만 더 출근하면 된다는. 이런 마음을 먹고 사직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려웠지만.. 조금 더 일찍 말했으면 당장 다음 주로 마무리가 되었을 텐데 역시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
10월 초까지 마무리 하고 당분간은 누구의 와이프이자 누구의 엄마로 살아볼 예정이다.
아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된다. 아이 24개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간헐적 워킹맘이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종일반에 있는 아이!!
또래 아이들 다 하원하고 혼자서 선생님이랑 있는 아이가 생각이 난다. 종일반 가기 싫어서 유치원 등원버스 안 타겠다고 도망가던 시절도 생각이 나고.
5일 중 2일 만이라 괜찮을 것이라는 어른은 생각은.. 틀렸었구나를 최근에 알았다.
곰곰 이에게 "이제 10월부터는 엄마 회사 안 가"라고 했더니 아이가 진짜 엄청 엄청 기뻐하며 뛰었다. "종일반 안 가도 되는 거지" 하며 오예오예를.. (아니..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닌 두 번만 출근이었는데.. 아이에게는 수치가 중요하지 않았었더라는)
초보 엄마는 두번 종일반 보내는 것도 미안해서 나머지 날은 정말 미래 체력 쓰며 놀아주거나 곰곰이와 같이 여기저기를 다녔었는데.. 다 의미 없었네.. 했다. 곰곰 이가 느끼는 건 그저 가기 싫은 종일반이었을 뿐.
간헐적 워킹맘이었어도 늘 고민과 힘듦의 연속이었는데.
제대로 일하시는 워킹맘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아이 학교 가면 다시 일을 하는 게 순서라는데 나는 거꾸로 가는 생각이 들어 불안 초조 하긴 하지만 그래서 사직을 하는 것이 맞는지 1년을 고민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고 아이가 학교 가고 적응 좀 하면 일도 더 늘릴 마음도 있었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수천번 생각해 본 것 같다. 취직도 어렵지만 사직도 어렵다는 걸 느껴본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한다는 것은 진심 힘든 일이란 것을 너무도 잘 느꼈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엄마가 된다는 설렘과 책임감 그리고 동시에 시작되는 경단의 압박.. 아이 키우다 보니 경제적 압박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지. 무엇을 선택하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어서 생각에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경단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포인트는..
아이의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좀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뒤엔 백수가 된다.
오로시 백수가 되는 것은 22년 만에 처음이라.. 두려움반 걱정반이지만.
내 마음의 평화.
종종거리지 않고 급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편안이라는 것을 이뤄보고 싶다.
유유하게 소소한 행복을 쌓아 보고 싶다.
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직과 동시에 고민하던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이사.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주거지를 바꿔 보려고 한다. 이생각도 1년은 한 것 같다.
매사 생각 오래 하는 스타일.
매사 시작이 어려운 스타일.
요즘은 일하지 않는 날에는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거나 집을 보러 다닌다.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는지 찾기 참 어렵다.
학교 입학을 해야 하니 아이가 없을 때나 아이가 어렸을 때는 고려하지 않았던 이사하는 곳에서의 초등학교 위치와 어떤 학교들이 있는지를 고려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고로 집을 보면서 더 어려움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래서 학군지로 이사를 생각하나요.?
" 아니요"였다.
학원을 많이 보낼 것이가?
" 아니요 "였다.
나의 오랜 고민들은 의도하지 않게 의식의 흐름대로 전원주택으로의 이사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생각도 진작 했었으면 아이 어릴 때 더 일찍 했더라면 이 역시도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
아파트생활만 하던 우리가 전원주택의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집을 짓는 것은 아니고 아이 초등학교 동안만이라도 전원생활을 하려고 한다.
느닷없는 나의 전원생활 로망이 하필 지금 튀어나와서..라고 해두자.
전원주택을 보러 다니다 보니 이러니 집을 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뭐가 맘에 들면 뭐가 맘에 들지 않고 100% 만족되는 곳이 없다고 말해준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을 몸소 느끼고 있다.
무튼 당곰이 네는 현재 8년을 살아온 이 도시에서 떠나려 준비 중이라는 사실.
곰곰 이가 마당 있는 집 계단 있는 집에 더 신이 나있다. 맘 같아선 짓고 싶은데.. 어떻게 더 열심히 더더더 안될까요 여보~.
내가 예쁜 집을 혼자 보러 다닌다고 유치원 갈 때마다 혼자 가지 마 엄마 혼자 집 보러 다니지 마 엄마 신신 당부 하고 간다.
잠들기 전에 엄마 오늘도 혼자 예쁜 집 보고 왔지 하며 나를 떠보는 곰곰 이에게 나도 모르게
"응.. 맘에 드는 집 찾는 것이 참 어렵네. 집도 잘 없고. 이러다 우리 이사 갈 수는 있을까? 요즘 엄마의 생각은 오로지 집집집이야."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들들 볶이려고 아주 정신을 내가 놓았구먼.
곰곰 이가 가만히 있다가
"엄마 나는 커서 집을 짓는 사람이 될까 봐!"
라고 한다.
"아 야구 선수에서 집 짓는 사람으로 바뀌었어? 뭐든 하고 싶은 것이 많으면 좋지 곰곰 아~"
"아니 엄마가 집이 없다고 고민을 하니까. 엄마아빠한테 근사함 집을 지어주려면 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
효자네.. 효자여. 아주.. 너의 미래 와이프가 이사실을 알고는 있니??
현실 당곰집사는
" 어어 그래그래 얼른 자!. 근데 곰곰아 집 짓는 사람이 안 돼도 집을 지을 수 있어. 아주 근사하게~"
" 어떻게?????????? 내가 안 지어도 돼? 아니지 엄마 내가 지어야지 "
" 집 짓는 사람한테 많은 돈을 주면 되지!"
"................"
"아하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되겠구나!?!"
"응 자라 곰곰아. 돈 많이 버는 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잠부터 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일 먼저 하고 놀아"
"...... 엄마.... 엄마.... "
"엄마 잔다. 쉿"
나의 고민이 안쓰러운 곰곰이는 근사한 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나는 곰곰 이의 즐거움을 위해 더 괜찮은 집을 찾아야겠구나. 이사의 길은 멀고 멀다.